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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과 화산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화산

by eun303 2024.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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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순다 해협에 있었던 활화산이다. 크라카타우산 자와섬 수마트라섬 중앙의 순다 해협에 있는 화산으로, 지금은 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대 크라카타우 화산이 기원후 약 416년에 폭발 뒤 함몰하면서 직경 7km 해상 칼데라가 형성되었다.

서기 535년에도 크게 분화하는데 규모가 거대했다고 한다. 그 분화로 큰 칼데라가 생겼고 라카타(Rakata)화산, 다난(Danan)화산, 퍼부탄(Perbuatan)화산이 일직선으로 생성되는데 이후 이 세 화산이 합쳐져 우리가 부르는 (1883년 이전의) 원래의 크라카타우 화산섬이 된다. 이 535년 분화는 536년에 벌어졌던 세계적 대지진을 일으킨 원인이라고 이른다.

 

또다시 1883년에 지수 6의 폭발을 일으켰는데 소리가 너무 커서 그런지 선원 중 반 이상이 고막이 터졌다고 한다. 소리는 몇천km 떨어진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들릴 정도로 컸다. 그 후 화산의 힘이 바닷속을 자극해, 해저 지진이 발생하여 높이가 36m나 되는 지진해일이 자바섬과 수마트라섬을 강타하였다. 이 파도로 무려 3만 6천명이 사망하였다. 그래서 최악의 화산폭발로 꼽히고 있다. 그 몇백년 후 크라카타우섬은 식물이 자라나 녹색으로 부활하였다. 그 후 바닷속에서 또 다른 화산이 폭발하여 아낙 크라카타우(Anak Krakatau, "크라카타우의 아이"라는 뜻)화산이 생겨났다.

이 화산이 유명한 이유는 크라카타우 화산이 인류 역사에 기록된 것 중 가장 커다란 폭음을 냈기 때문이다. 폼페이 유적으로 유명한 베수비오산과 함께 화산 분화의 대표로 흔히 일컬어지는 등 워낙 역사적으로 유명하기는 하지만 화산 분화의 규모에서 1등은 아니다. 역사에 기록된 화산 분화로 가장 강력한 것은 이웃에 있는 탐보라 화산의 1815년 대분화이고 1883년 분화는 그 1/8 규모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1870년대 후반부터 일련의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5월 20일에 1차 폭발이 일어난 후 크고 작은 지진과 분출이 이어졌으며, 인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이 폭발로 인한 지진이 감지되었다. 지속적인 여진과 분출이 계속되다가 8월 26일에 본격적인 폭발이 일어났다. 순다 해협은 수많은 선박이 지나는 항로인데, 1883년에도 많은 선박이 이 거대한 폭발을 기록하고 목격했다.

화산쇄설류도 바다를 가로질러 40km를 이동하여 수마트라섬 해안에 도착했다고 하는데, 결국 대폭발의 여파로 칼데라가 함몰하자 바닷물이 엄청나게 이동하여 대형 쓰나미가 발생, 3만6천 명이 사망했다. 당시 화산재 기둥은 25km 높이까지 치솟았고, 순다 해협 인근 전 지역에 화산재와 부석이 쏟아졌으며, 이틀 동안이나 태양 빛이 희미하게 가려질 정도였다. 이 대폭발은 무려 이틀이 지난 8월 28일이 되어서야 사그라들었으며, 폭발 이후 크라카타우섬의 3분의 2가량이 바닷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본래 섬에는 높이 약 813m인 크라카타우 화산이 존재했는데, 폭발 이후 함몰되어 바닷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 화산의 폭발은 역사적으로 유명하다.

1883년 당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인도네시아를 식민 통치할 때여서 충분한 자료가 있었고 과학적 분석이 이루어져 있다. 화산 폭발로 크라카타우 섬의 3분의 2가 사라졌다. 45년 후인 1928년에 새끼 섬이 해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 매년 수 m씩 자라나 현재 해발 338m까지 치솟아 있다. 인도네시아에선 이 섬을 '크라카타우의 아이‘(child of Krakatoa)이란 뜻으로 ’아낙 크라카타우‘(Anak Krakatoa)라 부른다. 사망자도 3만6,000명을 넘었고, 이 섬에 식물이 자라는 데 100여년이 걸렸다.

당시 화산 폭발로 남아프리카까지 쓰나미가 미쳤고, 세계 기온을 1.2도 떨어뜨렸으며, 각지의 기후재앙으로 기근이 발생했다. 1883년 8월 26일 일요일. 전날부터 시작된 크라카타우 화산의 분화가 이날 오후 1시에 발작 단계로 접어들었다. 한 시간 뒤, 화산재가 만들어 낸 검은 구름이 27km 높이까지 치솟았다. 연속적인 화산 분출은 10분 단위로 진행되었다. 화산 인근 20km 이내의 선박은 짙은 화산재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했다. 직경 10cm의 뜨거운 화산 돌이 갑판에 떨어졌다. 오후 6시에서 7시 사이에는 작은 쓰나미가 약 40km 떨어진 자바와 수마트라 해안을 강타했다.

이틀 후 8월 27일에도 4회의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순다 해협의 넓은 지역과 수마트라 해안의 여러 지역은 화산의 화산 분출물로 뒤덮였다. 폭발로 인해 방출된 에너지는 지금까지 실험한 가장 강력한 핵무기 Tsar Bomba 의 약 4배에 해당했다. 200 메가톤의 TNT를 터트린 효과였다고 추산되었다. 이날 오전 10시 40분에 일어난 화산 폭발로 라카타 화산의 절반이 산사태로 날아갔다.
여러 차례의 거대한 화산 폭발은 순다 해협에서 64km 떨어진 선박에서 선원들의 고막을 파열시켰다.
그 후 폭발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8월 28일 아침까지 크라카타우는 침묵했다. 작은 분화는 그해 10월까지 계속되었다. 원래 섬의 30% 미만만 남게 되었다. 70%는 날아가거나 분화구로 빨려 들어갔다.
크라카타우에서 분출된 화산재는 심각한 재앙을 초래했다. 약 90km 남쪽의 반텐(Banten)에 있는 토지는 황무지가 되어 그 후 사용되지 못하고, 후에 밀림이 되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당국이 기록한 공식 사망자는 3만6,417명이었다.
화산 폭발로 인한 쓰나미는 남아프리카에까지 밀려갔다. 수개월 후 그 지역의 배가 좌초되면서 수많은 시신이 바다에 떠다녔다고 한다. 메라크(Merak)시 높이 46m의 쓰나미로 파괴되었다. 화산 분출물은 수마트라 연안에 40km 떨어진 곳에 닿았고, 뜨거운 수증기가 물을 가로질러 이동했다.

화산 폭발로 크라카타우섬의 70%가 사라진 데 이어 라카타 콘(Rakata cone)에는 갑작스러운 붕괴로 250m의 절벽이 생겼다. 열도의 북부 3분의 2에 해당하는 지역은 바위섬만 남았다.
1883년 크라카타우 화산분출은 전 세계 평균기온을 1.2도 떨어뜨렸다. 화산재가 바람에 의해 대기 성층권에 주입되어 태양으로부터 유입되는 빛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1883년 7월부터 1884년 6월까지 기록적인 강우량은 크라카타우 분화에 기인했다고 분석된다.

1883년 크라카타우 화산 폭발은 수년 동안 전 세계 하늘을 어둡게 했다. 화산재가 구름층에 입자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1927년 크라카타우 화산이 있던 자리에서 다시 대폭발이 일어나면서 현재의 아낙 크라카타우 화산이 솟아올랐다.

폭발이 반복되던 아낙 크라카타우 화산은 2018년 12월 폭발과 함께 해저 산사태와 쓰나미를 연쇄적으로 촉발했다.


그러던 2018년 7월, 아낙 크라카타우가 분화를 시작하였다. 처음엔 하와이 화산 활동과 비슷한 규모로 분화하기 시작하더니 8월에는 섬 전체가 화산 분출 물질로 뒤덮였다. 10월 17일에 한 번 분화하였으며 주 분화구와 합쳐져 분화구의 크기가 커지더니 2018년 12월 22일에 폭발하였다. 이 폭발의 영향으로 화산재가 정상부터 1.5km 높이까지 상승하고 화산 남서쪽 경사면 64헥타르 면적이 붕괴하여 해저 쓰나미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지질학적 괴수'라는 두려운 별명을 얻게 되었다.

 

2023년 6월 9일 오전 7시 46분쯤 다시 폭발이 시작되어 10일까지 7차례 폭발이 일어났다. 이번 폭발로 화산재가 산 정상에서부터 3㎞ 높이로 치솟았고 용암도 흘러내렸으며 인도네시아 당국은 아낙 크라카타우의 경보를 두 번째로 높은 2단계로 유지했고 반경 5㎞ 이내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접근 금지 조치도 유지했고 인도네시아 당국은 앞서 지난 5월부터 화산 활동이 시작돼 주민과 관광객의 접근을 막았다.
1만7000여개의 섬으로 이뤄진 인도네시아는 '불의 고리'로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있어 활화산이 120여개에 이르고, 지진도 잦아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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